one night carnival / 초로컬 친목질 블로그.
by joydvzon
New Trolls in Seoul

1987년이었을 겁니다. 지금은 연락이 되지 않는 친구 송치헌군. 꼭 다시 연락하고 싶은 이 친구가 어젯밤 전영혁의 FM25시에서 굉장한 것을 녹음했다며 들고 온 테이프. 당장 워크맨에 꼽고 들어보니 이것은 무슨 클래식?

그것이 바로 뉴트롤즈의 첫 인상이었습니다. 이탈리아의 프로그레시브 록.
그 이후로 바로 그 노래 'adagio'를 마르고 닳도록 들었고 그들의 음반을 빽판으로 구입했습니다.
관심있는 여자아이마다 정성스럽게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해 선물했으며
그 여자아이가 떠나갈 때마다 역시 들으며 분루름 삼켯 눈물을 흘렸죠.

하지만 세월이 지나고, 그 촌스러운 아트락 따위를 듣는 아이들은 위어도 취급을 받는 시대가 오고, 한동안 나는 그들의 음악을 듣지 않았습니다. 그런데 애써 찾아 듣지 않아도 자주 들리게 되더군요. 그 엄준한 세월의 심판 속에 말도 안되는 아트락 그룹들이 정리되고 나서도 뉴트롤즈는 고전으로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.

20년이 지나, 그 때 태어난 아이들이 성인이 된 지금.
20여년간 온갖 지질 궁상 발라드의 그 중앙에서 때로는 울리고 때로는 웃겨주었으며
장나라 닭다리 들고 해괴망칙 댄스 하던 광고에도 삽입됐으며
코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던 희한한 아이돌 가수의 노래에 샘플링돼 물건너와 고생하기도 했던
바로 그 노래
'Adagio'의 그들이 왔습니다.

제 기억 속의 그들은 이런 모습이었습니다만
세월이 지나니
이렇게 변해 있었습니다.
비토리오 데 스칼지

니코 디 팔로
 
오리지널 멤버 중 이 두 명만이 찾았고, 역시 전설중 전설인 라떼 에 미엘레의 드러머 알피오 비탄자가 작고하신 드러머 지아니 벨레노의 뒤를 이어 스틱을 잡았습니다.

그리고 젊은 세션 멤버들이 나머지 빈 자리를 채웠죠.

뉴트롤즈의 노래들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'선이 가는 목소리'를 맡고 있었던 지아니 벨레노의 목소리는 없었어도 나머지 하나의 '굵은 목소리' 비토리오 데 스칼지 만으로도 모든 것을 만족했습니다. 그리고 니코 디 팔로의 건반 연주와 그의 하모니 역시 만족스러웠습니다.

공연은 한마디로...

눈물바다.

새로운 기타리스트 안드레아 마따로네가 지미 헨드릭스의 흉내를 내며 'Shadow'를 연주하기 시작한 순간 정말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. 눈물이 콸콸 쏟아지는데 옆자리의 마누라한테 너무 쪽팔려서...
평생 라이브로 들어볼 것이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던 'Visioni'나 'Let It Be Me' 역시 지난 20여년간의 세월 속에 잃어버리고 또 얻어낸 것들을 기억하게 만들더군요. 정말 늙은 마니아에게 이렇게 좋은 선물은 없었습니다.
2부엔 한국인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'콘체르토 그로소' 공연이 이어졌습니다.
세계 초연이라는 '콘체르토 그로소 3'을 오프닝으로 선보였습니다. 물론 1,2만큼의 감동은 없었습니다만 비토리오 선생이 아직도 창작열에 불타고 있다는 사실은 제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들었죠.

그리고...
콘체르토 그로소1의 'Allegro'의 그 전주가 들려오기 시작하고...
늙은 마니아는 정말 마누라 눈치 보느라 쏟지 못했던 눈물을 펑펑 쏟아낼 수밖에 없었습니다.
사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멜로디들이었지만 정말 무슨 프리즌 브레이크 석호필 등짝에 새겨진 문신처럼 또렷하게 제 머리 속에 각인돼 있는 그들의 멜로디들이 눈앞에서 실연되고 있는데... 정말... 평생 이들의 공연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제게 엄청난 각성효과를 주더군요.

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3시간.

손이 부르터라 박수를 쳐댔습니다. 3번을 불러냈고 그들은 너무 기뻐하며 앵콜을 해줬습니다.
그들의 준비된 레퍼토리가 다 끝나고 결국 'Adagio'를 다시 한 번 연주할 때, 이제 그들과 다시 마주칠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슬퍼졌습니다.

LG아트센터 공연은 나름대로 자주 가는 편입니다만.
어제의 공연, 객석의 물은 정말 역사상 최악이었습니다!

정말 20년 전, 오타쿠라는 이름조차 없었고 마니아라는 용어조차 생소했던 그 시절에 서울은 청계천으로 부산은 남포동으로 빽판 사러 다니던 그 너드들이 심지어 나이까지 퍼먹어 모여들었으니 (본인 포함) 얼마나 그 물이 상태가 좋지 않았겠습니까.
저를 포함한 늙은 마니아들이 총동원돼 아다지오를 따라부르고 앉았는 공연.
"투 다아아아아아아아아이~ 투 슬리이이이이이이이이이입"
으아 정말 어둡고 슬펐다구요.

당연히 공연중 사진 촬영 불가였지만 앵콜중엔 진행요원들이 눈감아 주더군요.


1980년대 당시를 조금 지나고 나서야 코찔찔이를 면해 그 이후 뉴키즈 팬이었던 마누라 역시 뉴트롤즈 할아버지들의 공연에 감동했습니다. 음악이 너무 아름답고 좋다고. 그렇습니다. 아트락. 이 구린 용어가 그들에게는 너무나 정확하게 잘 맞아떨어졌던거죠.

by acid | 2007/04/06 17:27 | favorites | 트랙백 | 덧글(4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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Commented by 욘욘주게찌 at 2007/04/06 19:01
영감님아 어제 흘린 눈물콧물 다 긁어모아 창작을 해보아욘!
Commented by shccrom at 2007/04/09 16:22
아..T.T 저도 1996년 중 3 겨울 allegro를 듣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..흑;
Commented by 1mokiss at 2007/04/09 22:54
와, 공연이- 오늘 오랜만에 갑자기 이들의 'Quella Carezza Della Sera'를 듣고싶어 찾아들었는데, 와, 감동이었겠습니다-
Commented by 이달콤 at 2009/06/17 13:01
올 9월에 다시 내한합니다.

서울아트록페스티벌에서 http://cafe.daum.net/sarf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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